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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이라는 표현, 언론의 중립성을 시험하다

orange14-19 2025. 5. 3. 09:11

출처 : 스마트에프엔(https://www.smartfn.co.kr)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주요 언론은 일제히 ‘선종(善終)’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겉보기에는 경건하고 존중의 뜻이 담긴 단어처럼 보이지만, 이 용어를 언론이 별다른 설명 없이 받아쓰는 행태는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선종’은 단순히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 교리를 전제로 한 용어로,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마치고, 영혼에 대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종교적 의무를 완수하고 신의 심판 앞에 떳떳하게 섰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종교 내부에서 통용되는 이와 같은 개념을 세속 언론이 아무 비판 없이 차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언론은 사실을 전하는 동시에 공적 담론의 기준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특정 종교의 교리적 해석을 객관적 사실처럼 전달하는 순간, 언론은 중립성과 보편성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스스로 저버리게 된다. ‘선종’이라는 단어가 지닌 신학적 함의는 종교적 신념이 없는 독자에게도 무비판적으로 주입될 수 있다. 이는 종교적 언어를 통해 특정 집단의 권위를 재생산하는 방식이며, 결과적으로 언론의 공정성을 훼손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인간적 사건이다. 교황이라는 상징적 인물일지라도 죽음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언론이 종교적 언어를 통해 그 죽음을 성스러운 사건으로 미화하는 것은 사실을 은폐하는 행위이며,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언론의 태도는 언어적 위선으로 이어진다. 겉으로는 객관성과 중립성을 표방하면서도, 강력한 종교 권위 앞에서는 그 언어를 차용하며 종속적인 자세를 취한다. ‘선종’이라는 단어를 공적인 뉴스 기사에서 사용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내부 언어를 사회 전체에 무비판적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언론이 특정 종교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언론이 교황에 대한 애도와 존경의 뜻을 담고자 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 언어는 신앙에 기대어선 안 된다. 세속 사회에서 사용 가능한 완곡하고 품위 있는 표현은 충분히 존재한다. ‘서거’, ‘별세’ 같은 표현만으로도 애도의 뜻은 충분히 전달된다. 굳이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는 식의 신학적 확언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세속 국가의 언론이라면 종교를 존중하되, 공적 언어에서는 종교적 특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교황 역시 한 인간으로서 생을 마쳤고, 언론은 그 사실을 담담하게 전하면 그만이다. 죽음을 신의 축복으로 포장하거나, 종교 권위에 기댄 특별한 서사로 치환할 필요는 없다.

언론은 진실을 전달하는 기관이지, 종교 권위를 전하는 매개체가 아니다. ‘선종’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권력과 신앙의 논리가 스며들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정 종교의 언어를 사실 보도의 외피로 포장하는 관행은 이제 벗어나야 한다. 죽음을 어떻게 전하느냐는 언론의 품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이며, 독자와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