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전 세계로 드러난 조직적 아동 성범죄: 가톨릭 교회의 은폐와 그 대가

orange14-19 2025. 5. 10. 10:15

출처 : 더블린 시내 풍경 [아일랜드닷컴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조직적 성범죄, 단일 사건이 아닌 전 지구적 추문

가톨릭 교회 내 아동 성범죄는 단일 국가의 일탈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어온 조직적 범죄였다. 2002년 미국 보스턴에서 터진 사제들의 성추행 폭로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유럽, 남미, 호주 등지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줄줄이 드러났고, 그 양상은 수십 년간의 범죄와 체계적 은폐라는 공통된 패턴을 보였다.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범죄는 사회적으로 은폐되었으며,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컨대 프랑스 독립조사위원회는 지난 70년간 약 33만 명의 아동이 성직자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추산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범죄가 조직적으로 은폐되었으며, 피해 아동의 80%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이는 교회가 신앙이라는 명분 아래 신도들의 신뢰를 악용한 구조적 폭력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국가별 주요 사례와 피해 규모

201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대배심 보고서에 따르면, 6개 교구에서 300명 이상의 사제가 1,000명이 넘는 아동을 대상으로 수십 년간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상당수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사제는 미성년자를 임신시켜 낙태를 유도하거나 7세 아동을 성폭행한 사실을 자백했지만, 교회는 이들을 외부로 전출시키는 수준에서 사건을 무마했다. 보고서는 "이제는 분명해졌다. 이는 특정 지역의 예외가 아닌, 교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아일랜드 정부 조사에 따르면 1940년부터 1990년대까지 수만 명의 아동이 성직자에 의해 학대당했으며, 호주에서도 가톨릭 사제의 7%가 아동 성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 교회는 2017년까지 피해자 수천 명에게 약 2억7천만 달러에 달하는 합의금을 비공개로 지급했다.

은폐와 책임 회피의 조직적 구조

가톨릭 교회 지도부는 성직자의 범죄를 외부에 공개하거나 처벌하는 대신, 문제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 교구장들은 가해 사제를 다른 본당으로 이동시키며 사건을 무마했고, 피해 사실을 알고도 외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더블린 교구 조사보고서는 교회가 “비밀 유지와 평판 보호에 몰두한 나머지, 피해 아동의 복지와 정의 실현은 철저히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바티칸은 1997년 아일랜드 주교들이 사제 성범죄를 경찰에 의무 보고하려는 방침에 제동을 걸었고, 더블린 대주교는 이를 두고 "교황청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행태는 바티칸 고위층까지 조직적 은폐에 관여했음을 시사한다. 프랑스에서는 한 주교가 성추행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집행유예에 그쳤고, 해당 주교를 옹호한 추기경은 “신의 법이 인간의 법보다 우선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과거 교황청 고위 인사까지도 문제가 된 사제를 보호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는 단순한 개별 사제의 일탈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공모한 범죄임이 명확해지고 있다.

미온한 처벌과 반복된 책임 회피

가해 성직자들에 대한 교회의 징계는 대부분 ‘은퇴 권고’ 수준에 그쳤으며, 사법적 책임은 거의 묻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가해자는 본당 신부에서 주교로 승진하기도 했다. 미국과 아일랜드의 사례를 보면, 형사처벌을 받은 성직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많은 사건이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으며, 교회의 조직적 방해로 증거가 소실되기도 했다.

2021년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들은 바티칸이 여전히 각국의 사법 절차에 비협조적이며,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배상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교회가 법과 도덕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특권 계층이라는 오만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자들의 외침과 바티칸의 늦장 대응

피해 생존자들은 수십 년의 침묵을 깨고, 교회의 은폐와 배신을 고발하고 있다. 피해자 단체들은 성폭행 자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교회가 이를 조직적으로 외면하고 침묵했다는 사실이라고 증언한다. 프랑스 피해자 단체는 이를 “신뢰와 도덕, 순수함에 대한 배신”이라 규정하며 강력히 규탄했다.

교황청은 늦게나마 사과와 대책을 발표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에서야 성학대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행위”라고 언급했고, 베네딕토 16세는 일부 피해자를 직접 면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칠레 사태 이후 전 세계 주교단을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반복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변화와 책임 추궁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교황청이 교회 기밀문서를 공개하고 가해자에게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정의 실현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도덕적 권위의 추락과 교회의 쇠퇴

가톨릭 교회는 이번 사태를 통해 도덕적 권위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렸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특히 아일랜드 등에서는 주말 미사 참여율이 급감했다. 1970년대 90%를 넘던 아일랜드의 미사 참석률은 2016년 36%로 떨어졌고, 교회는 “사실상 종말적 쇠퇴 상태”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톨릭 신자의 37%가 성범죄 스캔들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교회가 범죄 앞에서도 진실과 정의보다 조직 보호를 선택한 결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쇠퇴는 외부의 탄압이 아닌, 스스로 자초한 몰락이다.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가는 교회에 대해 일부는 “더 이상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조직은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수많은 생명을 짓밟고도 실질적 책임을 회피한 조직에 남은 것은 신의 심판이 아닌 대중의 냉정한 심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