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직자의 아동 성범죄 문제는 미국 사례를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교회가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건은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 성폭력 사건은 그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해당 사건은 수십 년에 걸쳐 청각장애 아동들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성범죄가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교회 조직이 이를 인지하고도 방조했다는 점에서 특히 충격적이다.
195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장기적 학대
사건의 발단은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 위치한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다. 이곳의 졸업생 67명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신부와 수도사들에게 지속적인 성폭력과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2009년, 피해자들은 오랜 침묵을 깨고 집단 고발에 나섰고, 24명의 가해 성직자 명단을 포함한 구체적 진술을 제출했다.
해당 명단에는 니콜라 코라디 신부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197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로 이동해 멘도사 지역의 자매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계속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돌봄’은 가면에 불과했고, 실상은 아르헨티나에서도 동일한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가해자는 국경을 넘고, 범죄는 되풀이되었다
코라디 신부는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뒤에도 멘도사 지역의 프로볼로 학교에서 동일한 수법으로 아동을 성폭행했으며, 현지 신부 호라시오 코르바초와 함께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조직적인 학대를 지속했다.
2016년 말, 아르헨티나 경찰의 기습 수사로 두 사람은 체포되었고, 2019년 현지 법원은 코라디에게 징역 42년, 코르바초에게 징역 4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이는 피해 아동들이 직접 수어와 그림을 통해 증언함으로써, 사법 정의가 이뤄진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교회 조직의 은폐와 소극적 대응
이 사건에서 더욱 심각하게 지적되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구조적 은폐다. 피해자들이 2009년 코라디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실명을 공개하며 고발했음에도, 교회는 사실상 어떠한 실질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바티칸은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2010년에야 조사를 지시했고, 이탈리아 법관 마리오 산니테가 조사관으로 임명되었다.
산니테는 피해자들을 수개월간 인터뷰한 끝에 대부분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정작 코라디에 대한 증언은 “가해자를 지나치게 많이 지목했다”는 이유로 신뢰성을 낮게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24명의 가해자 중 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는 단 5명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아이들과 떨어져 기도하는 것”에 그친 형식적 조치였다.
코라디 신부는 징계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었고, 바티칸은 고령 등의 이유로 일부 성직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했다. 명백한 성범죄 정황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건을 축소·무마하는 데 급급했다.
피해자 경고마저 외면한 교황청
피해자들은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와 베로나 교구에 공동서한을 보내 가해자 14명의 명단을 다시 전달하고, 코라디가 아르헨티나에서 여전히 활동 중임을 경고했다. 그러나 바티칸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고, 두 해가 지난 2016년이 되어서야 교황의 측근인 안젤로 베추 대주교가 “교황이 사안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는 원론적 회신을 보냈을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아르헨티나 멘도사 교구는 코라디의 과거 범행 이력을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바티칸과 지역 교구 간 정보 공유 체계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결국 코라디가 다시 아이들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배치된 것은 교회의 구조적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였다.
“교회는 외면했고, 경찰이 움직였다”
이 사건은 교회가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외부 사법기관의 강제력에 의해 겨우 진실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교황청은 코라디의 체포 이후에도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고, 바티칸 대변인은 “논평을 사양한다”며 침묵을 유지했다.
결국 피해자들을 구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경찰이었다. 한 피해자가 남긴 말처럼, “교회는 우리를 저버렸고, 교황은 외면했으며, 결국 경찰이 대응했다.”
이는 단순한 성직자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 침묵과 은폐가 수십 년간 지속된 결과이며, 교회가 내부 고발을 묵살하고 권위와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희생시켰다는 명백한 증거다.
구조적 결함과 교회 개혁의 과제
안토니오 프로볼로 사건은 가톨릭교회가 전 세계적 규모로 동일한 문제—성범죄의 은폐, 피해자 외면, 무책임한 인사 관리—를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황청의 무대응과 지역 교구의 안일함, 피해자 경고의 묵살 등은 단순한 행정적 오류를 넘어 구조적 결함을 시사한다.
종교적 권위 뒤에 숨은 폐쇄성과 무책임은 더 이상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사건은 교회의 자기쇄신, 투명한 정보공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제도화가 얼마나 시급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는 더 이상 “기도와 침묵”으로 회피할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