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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

가톨릭 교회의 구조적 위기: 볼리비아 성직자 성추문 사건을 중심으로

출처 : 라파스 AP /뉴시스

가톨릭 교회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의 영적 지침을 제공해왔지만,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성직자에 의한 성폭력 및 성추문 사건이 연이어 폭로되면서, 교회 조직 전반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최근 드러난 사례들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가톨릭 교회의 구조적 결함과 은폐 문화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본 고에서는 최근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성추문 사건을 중심으로, 피해자 증언과 교회 및 교황청의 대응, 사회적 반응을 분석하고, 이러한 사태를 반복적으로 초래한 조직적 요인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1. 성추문 사례 및 피해자 증언

2023년, 볼리비아에서 폭로된 가톨릭 성직자 성추문 사건은 그 충격성과 파급력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사건의 중심에는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성직자 알폰소 페드라하스(Alfonso Pedrajas)가 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볼리비아의 빈곤층 아동을 대상으로 한 기숙학교에서 근무하며 수십 명에 이르는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페드라하스는 사망 전 남긴 일기에서 약 85명의 피해자를 언급하며 자신의 범행을 사실상 자백했다.

특히 피해자들의 증언은 교회 내에서 발생한 조직적 침묵과 은폐를 드러낸다. 과거 같은 학교에서 사제 수련 중이었던 페드로 리마(Pedro Lima)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이 지옥에서 살았다. 낮에는 성직자, 밤에는 악마였던 이들이 아이들을 학대했다”고 증언하며, 피해 사실을 교회에 신고했음에도 오히려 처벌당했다고 밝혔다. 리마는 2001년 동료 사제들의 범행을 고발한 이후 예수회에서 추방당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는 교회 내 권위주의적 구조와 고발자에 대한 탄압 현실을 보여준다.


2. 교회 및 교황청의 대응

사건 보도 이후, 예수회 볼리비아 관구는 해당 일기 사본을 확보해 사법당국에 제출하고, 내부 조사를 착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즉각 특별 조사관을 파견하며 사건의 심각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교황청은 볼리비아 정부의 수사에 전폭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현지 교회 지도부는 공개 사과와 함께 피해자 지원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이미 늦은 대응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페드라하스 신부의 일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범죄를 동료 성직자에게 고백했으나, 돌아온 조언은 “고해성사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는 교회 내에서 문제 해결보다 은폐를 선택한 구조적 한계를 반영한다. 더불어 사건에 연루된 가해자들이 대부분 사망한 이후에야 진상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교황청의 과거 인식과 대처 방식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요구된다.


3. 사회 및 여론의 반응

볼리비아 사회는 해당 사건에 대해 즉각적이고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수도 라파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성직자 성범죄와 교회 내 은폐 관행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아이들을 지켜내라”, “성범죄 은폐를 중단하라”는 구호가 이어졌다. SNS와 언론을 중심으로 교회를 향한 비판 여론이 급속히 확산됐고,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은 직접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 교황청의 책임 있는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 역시 이 사건을 중대한 인권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유럽과 북미 언론은 볼리비아 사례를 상세히 보도하며, 교황청의 구조적 대응 미흡을 지적했다. 일부 신자들은 반복되는 사과와 약속에 환멸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는 등 신앙 공동체의 이탈 조짐도 나타났다. 반면, 또 다른 신자들과 성직자들은 교회의 정화를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피해자들과의 연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4. 구조적 문제 분석

본 사건은 가톨릭 교회 내 뿌리 깊은 구조적 결함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첫째, 폐쇄적 위계 구조와 성직자 중심의 문화가 문제의 근간에 있다. 성직자의 권위가 절대시되는 문화에서는 하급 성직자나 일반 신도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범죄 은폐가 용이해진다.

둘째, 조직 내부의 은폐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페드라하스 신부의 범행은 오랜 기간 동료 성직자들 사이에서 공유되었으나 실질적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교회의 명예를 보호하려는 집단적 침묵이 피해자를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셋째, 피해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의 부재가 문제다. 많은 경우, 교회는 성범죄 사건을 외부 사법기관에 신고하기보다는 내부적으로 처리하며, 솜방망이 처벌이나 단순 전임 조치에 그치는 사례가 반복되어 왔다. 이는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는 구조적 한계다.

넷째, 교황청의 중앙 통제력 부족과 지침의 비일관성도 지적된다. 2019년 이후 성범죄 대응 지침이 강화되었음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무력하거나 형식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세계 가톨릭교회 운영 전반의 거버넌스 문제를 시사한다.


결론: 교회의 쇄신은 가능한가

볼리비아 성직자 성추문 사건은 개별 성직자의 범죄를 넘어, 가톨릭 교회의 구조적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교회의 늦장 대응은, 신뢰 회복이 단순한 사과나 일회성 조사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교회 조직 내부의 문화와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다.

성직자라 하더라도 법과 윤리 앞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다. 교황청과 각국 주교단은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제도화하고, 모든 성범죄 신고가 외부 기관과 협조 하에 철저히 조사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또한 과거 사건에 대한 은폐와 침묵을 끝내고,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합당한 배상을 이행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가 진정한 쇄신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고통을 증언한 이들의 용기와 정의를 향한 사회적 요구에 얼마나 응답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