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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

콘클라베, 신비주의 너머의 권력 구조

출처 : https://blog.naver.com/kookh1/120181127793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있다. 교황 선출회의, 즉 콘클라베(conclave)다. 그러나 이 중대한 절차에 정작 평범한 신자는 단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한다. 투표권은 오로지 교황청 내 최상위 계층인 추기경들에게만 부여되며, 이들은 바티칸의 폐쇄된 공간에서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회의를 진행한다.

‘콘클라베’라는 명칭 자체가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하듯, 이 회의는 철저한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선거권을 가진 약 120명의 추기경은 모두 이전 교황들에 의해 임명된 인물로, 대개는 교회 내부 권력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엘리트 성직자들이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지도자가, 극소수 고위 성직자들의 폐쇄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비교할 때, 현대의 어떤 세속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민주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절차적 정당성이나 참여의 폭, 투명성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철저히 배제된 방식이다.

가톨릭 교회는 교황 선출을 두고 흔히 “성령의 인도”를 언급하며, 결과를 신의 뜻으로 정당화하곤 한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신이 선택한 분”이라는 경건한 찬사가 이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콘클라베 내부에서는 각기 다른 신학적 성향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닌 추기경들이 연합과 협상을 반복하며 표를 계산한다. 개혁과 보수, 지역적 이해가 교차하는 복잡한 정치적 역학이 작동하는 가운데, 교황은 종종 다양한 입장 간의 절충 속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신의 뜻’이라는 단일한 서사로 포장하는 순간, 현실은 감춰지고 신앙은 허위 의식으로 전락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신비주의와 비공개 절차가 단지 전통이나 의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재생산을 위한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의 어떠한 견제나 투명한 참관도 허용되지 않는 교황 선출 구조는, 교회 지도부의 기득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마치 중세의 귀족들이 성문 안에서 차기 군주를 추대하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까지도 평신도와 하위 성직자들은 교회 지도자 선출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이들에게 허락된 역할은 오직 결과를 수용하는 일방적 수용자에 머문다. 이러한 위계적, 폐쇄적 권력 구조는 민주주의 시대의 핵심 가치들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투명성과 참여, 책임성이 요구되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만이 과거의 봉건적 체계를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가톨릭 교회는 흔히 “종교 조직은 세속 국가와 운영 원리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방어에 나선다. 그러나 이는 현실 회피에 불과하다. 전근대적 방식으로 지도자를 선출하고도 전 세계인의 신뢰와 도덕적 권위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콘클라베가 종교적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외면한다면, 그 결과는 교회 스스로의 신뢰 기반을 침식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세상은 이미 변했다. 비밀 회의실에서 결정되는 종교 지도자의 정당성은 점점 더 설득력을 잃고 있다. 교회가 이러한 구조를 언제까지 답습할 수 있을지, 이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