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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

가톨릭 식민주의의 그림자: 교황청, 정복의 동맹인가 구원의 사도인가

출처 : https://blog.naver.com/gounv47/222176006853

 

가톨릭교회는 ‘복음의 보편성’을 내세우며 수 세기에 걸쳐 세계 곳곳에 선교를 전개해왔다. 그러나 그 신앙의 확장은 종종 식민주의와 맞물려, 정복의 정당화를 제공하는 도구가 되었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제국 건설 과정에서, 교황청과 가톨릭 성직자들은 영적 명분을 부여하며 원주민 사회의 해체와 인권 침해에 깊이 관여했다.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상흔으로 남아 있다.


교황의 칙서와 ‘발견의 원칙’: 정복을 승인한 신의 이름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직후, 교황청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 팽창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Dum Diversas(1452)와 Romanus Pontifex(1455) 칙서를 통해 비기독교 지역의 정복과 원주민 노예화를 허용했다. 이후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1493년 Inter Caetera 칙서를 통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토 분할을 승인하며, 식민지 경쟁에 교황청이 적극 개입하게 된다.

이러한 교황 칙서들은 '발견의 원칙(Doctrine of Discovery)'이라는 국제 관행의 토대를 제공했다. 이 원칙은 유럽 열강이 “발견”한 비기독교 지역을 정복하고 점유할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논리로, 무력 침탈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결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의 원주민 사회는 영토를 강탈당하고, 고유한 정치·문화 체계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대량 학살과 문화 말살: 성직자의 침묵과 공모

식민주의는 단순한 지배를 넘어선 전면적인 파괴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은 성직자들과 동행하며 원주민에게 가톨릭 신앙을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공개 처형과 고문이 가해졌다. 수천만 명의 원주민이 전염병, 강제노동,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이 모든 과정은 ‘개종’이라는 종교적 명분 아래 진행되었다.

당시 일부 성직자들은 식민지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방관하거나 조장하기도 했다. 반면, 도미니코 수도사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처럼 토착민의 권리를 호소한 인물도 존재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식민 확장이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 묻혀버렸다. 더불어 교황청은 이 시기 아프리카 노예 무역에도 묵인하거나 간접적으로 관여했고, 일부 수도회는 노예 노동으로 운영되는 식민지 농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원주민 기숙학교와 현대의 인권 침해

식민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교회의 인권 침해는 또 다른 형태로 지속되었다. 19세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북미 지역에서 운영된 원주민 기숙학교는 그 대표적 사례다. 캐나다와 미국 정부는 ‘토착민 동화’를 목적으로 아이들을 강제로 분리 수용했으며, 그중 다수 학교는 가톨릭 교회가 운영했다.

150,000명 이상의 원주민 아동들이 언어와 문화를 박탈당하고, 신체적·성적 학대를 당했다. 심지어 다수는 질병과 학대로 목숨을 잃었으며, 정확한 희생자 수는 오늘날까지도 파악되지 않는다. 2021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한 기숙학교 터에서 215명의 아동 유해가 집단으로 매장된 채 발견되자, 국제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캐나다를 방문해 공식 사죄했으나, 보상·행동 없는 사과에 대한 비판이 여전하다. 교황청 공식 매체는 눈물과 연민, 선물 등 감정적 키워드로 사과의 진정성을 강조했으나, 정작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 보상이나 진상 규명은 부족한 실정이다.


남은 식민주의 유산과 교회의 책임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과거 식민주의적 관여에 대한 실질적 반성과 구조적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원주민 공동체는 교황청에 15세기 칙서의 공식 철회와 토지·문화적 권리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과거 선교사의 동상 철거와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도 반성의 움직임은 존재한다. 2019년 아마존 시노드에서는 토착문화 존중과 지속가능한 사목 방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며, 일부 수도회는 과거 식민지 이력에 대한 조사와 기금 마련에 착수했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억압과 폭력의 유산을 치유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결론: ‘성스러운 침묵’은 끝나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식민주의적 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원주민 공동체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고통이며, 교회 도덕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교황청이 진정한 회복을 원한다면, 단순한 사과나 상징적 조치로는 부족하다. 역사적 진실에 대한 직면, 가해자의 책임 인정, 그리고 실질적 보상과 치유의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침묵과 공모의 역사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